2014.04.26 12:32
요즘 필름 카메라를 자주 씁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집에 필름 카메라가 여러 대 있기도 합니다. 수십 년 전 모델서부터 십여 년 된 모델까지, 완전 수동에서 자동카메라까지 비싼 카메라는 아니지만, 꽤 쓸 만한 것들로 필름을 넣고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은 빛과의 싸움이라는데, 필름 카메라를 쓰는 일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아무렇게나 셔터를 눌러대곤 했는데, 필름 카메라는 사진 한 장을 찍으려면 어쨌든 뷰 파인더를 들여다 보면서 호흡을 한 번쯤 가다듬곤 합니다.
사진이 곧 돈이라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마구 찍어대지 못합니다. 게다가 필름을 한 통 다 쓸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다 찍은 필름을 현상에 맡기고 사진이 나오기까지 빠르면 몇 시간 늦으면 며칠을 기다려야 합니다.
필름을 맡기고 일주일이나 있어야 사진 뽑아주는 아저씨가 돌아오신다고 해서 그렇게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당장 찍고 그 자리에서 잘 찍혔나 볼 수 없는 필름은 불편한 것 같지만, 나름대로 장점이 많습니다.
일단, 필름 카메라를 쓰면서 나 자신을 다시 다스리고 있습니다. 뭐든지 급한 성격이었는데, 나름대로 “천천히, 천천히”를 주술처럼 외우곤 합니다.
뭐든지 선명하게 잘 나오는 게 아니라, 때로는 필름의 특성에 따라 다 다르게 표현되는 빛과 색상이 독특해서 좋기도 합니다.
사진이 생각처럼 안 나오면 디지털의 경우에는 포토샵으로 고치곤 하지만, 필름은 정직해야 합니다. 흠을 가릴 수가 없습니다. 수정하면 망가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필름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현상과 인화의 과정에서 여러 작업을 통해 변형시키는 작품을 만들 수도 있지만 아무튼 필름의 정체성은 정직에 있습니다.
찍힌 대로, 찍은 대로 보여줍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서, 천천히 조금만 더 여유를 갖고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한 순간에 모든지 다 해치워야 하는 우리의 정서는 메마른 것은 아닌지 다시 묻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참고 기다리는 훈련을 새삼 하면서 정직하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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