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람데오> 아버지의 저녁

2014.11.01 21:14

admin 조회 수:1446

일감을 찾으러 나간 아버지는 하루 종일 빈둥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새벽별 밝은 시간,  차가워지는 가을 날씨를 몸으로 맞으며 아침에 작은 빵 한 조각으로 허기를 채우고 하릴 없이 기다렸습니다. 

주변에 일거리를 찾아 나왔던 동향 사람들이 하나 둘씩 일꾼을 찾는 이들을 따라 떠나면서 오전부터 사람들이 반 넘어 빠져 나갔지만, 아버지는 점심시간이 가까워져도 일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점심은 빈 페트병에 담아 들고 간 물 반병으로 때우고 눈을 부릅뜨고 일을 맡길 사람이 오길 기다리지만 차례가 오지 않았습니다. 한낮이 되었는데도 날씨는 더 쌀쌀해지는 듯했습니다. 

오늘은 어떻게든 일을 해서 일당을 벌어야 했습니다. 아이들 넷 뉘워 놓고 식당 주방 허드렛일 나가는 아내는 주급 모아 월세 내고 먹을 것이 떨어져 한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막내 감기약도 사야 합니다. 거의 일주일 째 좋아하는 학교도 못가고 누워 있습니다. 둘째 신발도 오늘은 사줘야 합니다. 너무 낡아 물 새고, 바람 새는 신발 바닥이 어제 떨어졌습니다.

오후 2시가 넘었습니다. 일꾼을 찾는 사람이 와서 몇 몇을 데려갔습니다. 거리에는 오늘 일을 다 놓친 사람들이 드문드문 말없이 서서 하루를 보내려 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에는 시끌벅적 서로 이야기도 하지만, 이 시간쯤이면 다들 말이 없어지곤 합니다.

오후 5시가 넘어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는데, 낮에 일꾼을 데려갔던 사람인 듯한 이가 와서 손짓으로 불렀습니다. 청소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얼마를 줄 거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가는 길에 왜 여태껏 여기 있느냐고 그 사람이 물었습니다. 그냥 웃었습니다. 몇 사람이 일을 하는데 마무리를 빨리 하려고 손이 더 필요했던 듯 했습니다. 일은 한 시간 조금 넘어 끝났습니다.

일을 시키던 사람이 한 사람씩 돈을 세어 주었습니다. 하루 일당을 받은 사람들이 씩씩한 발걸음으로 왁자지껄하면서 골목을 빠져나갔습니다. 아버지 차례였습니다. 그 사람은 아버지에게도 하루 일당을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싶었습니다. 돌아서 나오는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이들 생각에 웃을 수 있었습니다. 저녁에 한 시간 남짓 일했지만 하루치를 받았습니다. 약을 사고 싼 신발 하나 사줄 수 있을 겁니다.

그 저녁에 아버지는 낙심의 자리가 기쁨의 자리로 변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사람을 만난 것을 은혜라고 했습니다. 

모든 인생에는 저녁이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혹시 그 사람을 만나셨습니까? (마태복음 20장 1~16절)

사랑합니다.

조항석 목사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