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람데오] 아버지의 고향

2014.11.08 20:08

admin 조회 수:1976

장 폴 사르트르는 20세기를 풍미했던 실존주의 철학자입니다. 20세기 대표 지성이었던 사르트르의 무신론적 사상은 복음주의에 도전하여 많은 젊은이들이 신앙으로부터 멀어지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사르트르는 심지어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죽음 앞에서 그는 심한 공포로 인한 발작을 보여주었습니다. 1980년 3월 폐수종으로 입원하면서 그의 죽음에 대한 공포는 프랑스 정부가 그의 명성을 고려하여 노출을 막을 정도로 심한 것이었습니다.

한 달 후 그가 사망하자 언론은 그가 왜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했는지를 분석했습니다. 답은 “사르트르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오미는 흉년을 피해 갔던 모압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과부가 된 두 며느리와 남았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풍년을 허락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비록 모든 것을 잃었어도 나오미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있었습니다. 며느리 룻과 함께 빌어먹을지언정 가서 마음을 쉴 고향이 있다는 것은 나오미에게 전능자 여호와를 의지하는 믿음으로부터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나오미의 고향은 전능자 여호와였고, 그분의 은혜였습니다.

아버지를 지난 달 양로원에 모셨습니다. 한국 나이로 아흔 여섯의 아버지는 약간의 치매 증상이 진행되고 있었고, 다리에 힘이 빠져서 휠체어에 의지하셔야 했습니다.  처음 요양원에 입원하셨을 때 아버지는 완강하게 거부하셨습니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요양원에서 간호하는 분들과 돌봐드리는 분들과도 사이가 나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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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여를 보내시면서 아버지는 급격히 약해지셨습니다. 마음이 약해지시고 기억나지 않는 과거와 싸우셨습니다. 점차 현실에 적응하시면서 돕는 스탭들과도 사이가 좋아지셨습니다.

가을 단풍이 바람을 맞서던 날 아내가 가서 면도를 해드릴 때, 아버지께서 고향에 가고 싶다고 하셨답니다. 그 이야기를 하는 아내도 몹시 마음이 아파했습니다. 가슴이 철렁하면서 슬픔이 가을비처럼 온 몸을 적셨습니다.

하지만 감사했습니다. 아버지는 고향을 꿈꾸고, 고향을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육신의 고향, 산 좋고 물 맑은 용문산 자락을 다시 밟기는 어렵겠지만, 아버지는 하늘나라 본향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고향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버지의 고향은 아직 돌아갈 곳이 있는 소망이며 믿음입니다.
돌아갈 고향을 꿈꾸고 계십니까?


사랑합니다.

조항석 목사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