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1 13:06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20세기를 풍미하던 대표적 지성의 한 사람으로 그의 무신론적 사상은 복음주의에 도전하여 많은 젊은이들이 신앙으로부터 멀어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사르트르는 심지어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토록 무신론적 자유를 외치던 그가 정작 자신의 죽음 앞에서 심한 공포로 인한 발작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1980년 3월 폐수종으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보인 그의 죽음에 대한 공포는 프랑스 정부가 그의 명성을 고려하여 노출을 막을 정도로 심한 것이었다. 한 달 후 그가 사망하자 언론은 그가 병원에서 왜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했는지를 분석했다. 답은 “사르트르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나오미는 흉년을 피해 갔던 모압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과부가 된 두 며느리와 남았다. 이방인의 땅에서 얻은 이방인 며느리 둘과 함께 나오미는 상실의 두려움을 느꼈지만,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풍년을 허락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온다.
비록 모든 것을 잃었어도 나오미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있었다. 나오미에게 며느리 룻과 함께 빌어먹을지언정 가서 마음을 쉴 고향이 있다는 것은 전능자 여호와를 의지하는 믿음으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 나오미의 고향은 전능자 여호와였고, 그분의 은혜였다.
아버지를 지난해에 양로원에 모셨다. 한국 나이로 아흔 여섯의 아버지는 약간의 치매 증상이 진행되고 있었고, 다리에 기운이 없어서 휠체어에 의지하셔야 했다. 처음 요양원에 입원하셨을 때 아버지는 모든 환경을 완강하게 거부하셨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셨다. 요양원에서 간호하는 분들과 돌봐드리는 분들과도 사이가 나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시던 은퇴한 목회자의 모습은 아버지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때로 오래도록 울기도 하셨다.
그리고 약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는 점차 현실에 적응하시면서 돕는 스탭들과도 사이가 좋아지셨지만 그것은 치매증상의 진행일 뿐이었다. 그동안 전혀 들어보지 못하던 친구들의 이름을 말하시고, 고향을 말씀하셨다. 수십 년 전 한국의 어느 풍경 모퉁이에서 아버지는 멈춰서 계셨다.
가을 단풍이 바람을 맞서던 날 아내가 가서 면도를 해드릴 때, 아버지께서 고향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고 했다. “고향에 가보고 싶어”. 그 이야기를 전하는 아내도 몹시 마음이 아파 힘들어했다. 가슴이 철렁하면서 세월의 무거운 슬픔이 가을비처럼 온 몸을 적시며 흘렀다. 아버지는 어느 고향을 기억하고 계실까. 정정하실 때 아버지는 양평 용문의 선산에 한 구석에 자리잡은 당신의 묏자리를 말씀하시곤 했다. 죽으면 묻힐 곳이라고.
중증으로 깊어지는 치매증상 속에서 아버지는 고향을 꿈꾸고,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다. 아스라한 기억의 한 편에 조용히 숨겨져 남아 있는 아버지의 고향은 어릴 적 육신의 고향, 산 좋고 물 맑은 용문산 자락 어딘가 일 것이다. 육신을 갖고 다시 그 땅을 밟기는 어렵겠지만, 고향을 바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직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가 우러났다.
나는 아버지의 고향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본다.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다. 살아생전에 가보기는 어려운 육신의 고향 대신에 아버지에게는 예수께서 예비하신 거처인 영적인 고향이 있다. 우리가 본향이라고 하는 그곳에서 다시는 연약함도 슬픔도 없는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아직 돌아갈 곳이 있는 소망이며 믿음이다.
이 깊은 가을, 모든 자연이 대지로 돌아간 저문 계절에 모든 이들에게 이처럼 돌아갈 고향으로 말미암아 평안을 누리는 복이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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