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22 21:16
<중앙일보 칼럼> 흙수저도 아닌 매진에게
조항석 목사
헬핑핸드미션네트웍 대표
뉴저지 뿌리깊은교회 목사
새해가 되었다, 매진(Magine). 잘 지내고 있니? 미국 뉴저지는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가 계속 되고 있다. 네가 있는 아이티는 요즘도 화씨 구십 도를 넘나드는 날씨일 텐데, 개학해서 학교 다니고 있겠구나. 학교는 잘 다니고 있니?
1월 말에 또 아이티에 갈 준비를 하면서 네 생각이 많이 나서 편지를 쓴다. 지난 12월에 갔을 때 학교에서 공부한 책과 공책을 내게 보여주면서 고개를 숙이고 수줍어하던 네가 눈에 선하다. 곧 12살이 될 텐데, 이제 겨우 이름을 쓰고, 두 자리 덧셈 뺄셈도 자꾸 틀리면서 미안해 하던 네 모습이 그 더운 날씨에 오래된 상처처럼 욱식욱신 아프고 슬펐단다.
자꾸 미끄러져 간신히 오르는 가파른 비탈길을 이십여 분 올라가 숨이 턱에 차서 간신히 닿던 그 산꼭대기, 담도 없던 고아원 세 평 남짓한 허름한 방에서 마흔 다섯 명이 잔다고 했을 때 나는 정말 숨이 턱 막혔었단다. 그리고 열한 살인 네가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고 했을 때, 이름을 물어도 쓸 줄 모른다며 고개를 외로 돌렸을 때, 학교에 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자 네가 얕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소망이 없는 고아의 아픔이 가시처럼 나를 찌르고, 세상이 너무 기울어져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미안했었다.
고아원 원장님이 네 엄마는 돌아가시고 아빠는 정신병으로 어느 병원에 계시는 것 같다고 했을 때, 네 눈빛을 지나가는 한밤중 같은 슬픈 절망의 어두움을 보았었다. 하지만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미국에서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고등학교에도 갈 수 있다고 말해주었을 때 나는 네 깊은 눈 속에서 반짝 빛나던 소망의 불씨를 보았단다.
매일 매일 배고프고, 매일 힘들 거라는 걸 넉넉히 안다. 왜 아니겠니. 오늘도 두 끼 밥은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조차 사치스러운, 제대로 먹지 못해 비쩍 마르고 눈물조차 용납되지 않는 갇힌 공간에서, 한국에서는 가난한 집의 소망 없는 청춘들의 대명사가 된 흙수저조차 부러워해야 하는 너와 네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오늘도, 이 새해에는 넉넉히 먹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요즘은 쌀밥을 먹기도 하지만, 자주 아침에 스파게티 몇 가닥 먹고 학교에 갔다가, 오후에 옥수수죽 먹고 전기 없는 방에서 일찍 잠들어도, 너는 학교에 못 다니는 서른 명의 다른 아이들 중에서 선택받은 아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자부하며 고마워하고 있다는 거 알고 있단다.
매진!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네가 희망을 갖고 공부하기 바란다. 아직도 하루 두 끼를 넉넉히 먹지 못해서 여전히 영양부족에 소망조차 없어 보이는 너와 고아원 아이들에게 그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공부하는 거란다. 너를 후원해서 학교에 보내주는 후원자가 있고, 그 후원자를 보내주신 예수님이 계시므로, 비록 지금 배고프고 어려워도 그럴수록 더 열심히 책을 읽고, 덧셈뺄셈 연습을 하면 좋겠다. 그러면 어느 날 예수님께서 너를 세워 아이티의 가난한 이들의 따뜻한 이웃이 되게 하실 거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너를 생각하면 사실은 흙수저도 부럽단다. 금수저는 대를 물려줄 돈이 많은 집에 태어난 아이, 흙수저는 대대로 가난해서 소망이 없는 청년을 말한다는데, 너는 흙수저조차 못 되어서 절망의 무게도 열 배는 더 넘고, 내 생각에도 도무지 소망의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때도 있다.
하지만, 새해잖니. 해가 바뀌면 늘 꾸는 꿈을 이제 꾸어보자. 그래도 금년에는 지난해보다는 나을 거라는 소망을 품어보자. 금년에는 어떻게든 공부가 자리를 잡고, 먹는 일에 조금 덜 신경 쓰고 믿음의 소망을 품어보자. 흙수저도 아니라지만 대신에 예수님을 붙잡고 한 번 열심히 살아보자. 그 환경에서 천국을 누린다면 화나는 말이 되겠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한 걸음씩 걸어보자.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수저타령을 하는 게 아니라, 믿고 맡기는 거란다. 매진, 사랑한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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