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은 그의 시 산성비를 맞으며에서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혼자 밥을 먹는 일은 쓸쓸하다고 썼다. 그는 시에서 홀로 산성비를 맞으며 피어나는 모란을 바라보며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현실을 슬퍼했다. 그 슬픔은 혼자 밥을 먹는 쓸쓸함으로 깊어진다.


시가 쓰인 지 삼십 년이 지났다. 한국의 편의점에서 일인용 도시락이 가장 치열한 경쟁시장의 하나라고 한다.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을 지칭하는 혼밥족이라는 신조어가 일상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서울에서는 편의점 창가에 서서 혼자 컵라면에 삼각김밥을 먹는 넥타이 맨 젊은이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점심시간에도 혼자 밥을 먹고 저녁도 혼자 때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아가 혼밥족들은 이제 혼자 밥을 먹는 일을 오히려 즐기는 정도까지 되었다고 한다.


개인화 고립화가 깊어지는 사회 현상 가운데 마음 속에 쌓아둔 말이 많아서 혹시라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 생기면 폭풍수다를 떠는 이도 있다.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과 진지하게 대화하는 이도 늘어나고 있다. 세상이 숨가쁘게 돌아가면서 사람들은 개체화 되어가고, 가족은 해체되고, 심지어 직장에서조차 자기 이야기를 나누거나 밥을 함께 먹을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혼자 살다가 유명을 달리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나 발견되는 일도 일어나고, 혼자라는 외로움을 못 이겨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도 흔한 일이 되었다. 모여서 사회를 이루며 사는 것은 분명한데 그 가운데 고독이 사람들 사이에 검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속에 있는 말도 시원하게 못하고, 밥 한 그릇도 정겹게 먹을 수 없는 메마른 세상이 되고 있다.


혼밥족은 밥을 혼자 먹는 일도 즐긴다지만 사람은 서로 기대며 어우러져 살도록 창조되었다. 태초부터 서로 사랑하면서 살도록 창조된 것이다. 사랑하면서 산다는 것은 상대가 있다는 말이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둘 이상 여럿이 사는 것이다. 그 기본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최초의 공동체인 가정이다. ‘가정은 가장 따뜻한 단어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가정이 무너지고 가족이 사라져서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이 더 편하다고 여기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과부와 고아는 성경에서 가난한 사람의 대명사로 표현된다. 과부란 남편이 죽어서 혼자 사는 여자를 일컫는다. 고아란 부모를 잃은 아이다. 쓸쓸하고 가난하되 사람이 없어 쓸쓸하고, 사람을 잃어 가난한 것이다. 요즘이야 남편을 잃어도 경제적으로는 여유를 누리는 경우도 간혹 있겠지만, 적어도 성경이 말하는 시대의 과부는 말 그대로 혼자 남은 여자이고, 고아는 부모를 잃어 소망이 없는 아이이다. 달리 말하자면 가정의 틀이 사라진 것이다.


룻기에서 나오미는 청상과부로 남은 며느리 룻을 재가시키려고 애를 쓴다. 유대의 관례를 따라 친족인 보아스와 함께 가정을 꾸리도록 일을 만들고 마침내 새 가정을 통해 나오미 자신도 기쁨을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가계를 통해 다윗이 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완성된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정은 모든 역사의 시작이다. 가정은 사랑의 훈련장이고 사랑의 종점이다. 오 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잠시라도 주변을 둘러보면 회복되어야 할 가정도 많고, 가정을 이루어야 할 개인도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가족이 모여 사는 일은 봄이 되면 나무에 꽃피듯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자연스러움이 오염되고 파괴되고 무너지고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며 사는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이런 저런 사고도 많다. 개인화 되면서 오는 정서적 황폐함에서 비롯된 사건도 많다. 심각한 갈등과 사회적 여러 문제를 극복하고 각박해지고 황폐해지는 세상을 살맛나게 하는 일은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 회복에서 찾아야 한다.


중앙칼럼_06_0513하나님이 만드신 가정.JPG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