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에 관해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며칠 전 신문에 인공지능에 관한 신문 대담 기사가 실렸다. 제목이 “AI는 욕망이 없어 인간 지배 못 해였다. 인공지능(AI)의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의 대결은 사람들에게 인공지능, 흔히 단순하게 로봇이라고 표현하는 인간의 창조물이 결국 인간을 이긴다는 공포심을 주었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을 대체할 수 있다고 했다. 엄청난 노동력과 생산성에 학습능력과 판단능력, 사고력을 갖춘 인공지능이 육체노동뿐 아니라 지식 노동마저 대체하면서 인류가 오히려 자신의 창조물에 지배 받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심지어는 재판이나 설교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니 가히 인공지능이 만능을 넘어서는 공포를 느낄 법도 하다. 인간은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다거나, 인공지능은 인간을 지배할 수 없다는 논란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이제 인간과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의 선한 동행이 아니라 경쟁이 시작된 듯해서 결말이 찜찜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인간은 두 사람이 모이면서부터 질서를 배운다. 세 사람이 모이면 리더가 생기고 그 이후부터 우열이 나뉘고 아래위가 생기면서 경쟁이 시작된다. 인류의 삶의 질은 경쟁을 통해 발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쟁의 목적은 이기는 것이고 결과는 이겨야 하는 것이다. 일등이 아니면 안 되고,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안에서 야망과 욕망이 자란다. 인공지능에는 이것이 없다고 학자들은 이야기하지만, 영화에서는 인간을 지배하는 인공지능이 벌써부터 등장하고 있다. 이기려는 인간의 욕망, 앞서려는 인간의 본능이 인공지능을 만들고 그 지배를 받는다는 상상은 아이러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과 대화하고 교제하고 싶어 하셨다. 천지만물을 다 창조하신 후에 사람을 창조하셨다. 모든 것을 다 준비해두고 사람을 맨 마지막에 창조하신 것이다. 그 사람과 동산도 거닐면서 사랑하고 대화하며 번성하는 것을 지켜보길 원하셨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면서 일이 복잡해지고 말았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후에 하나님께서는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었으니 라고 하셨다.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은 아니다. 그래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경계선이었던 선악과를 먹은 후에 인간은 하나님의 징계로 에덴을 떠나게 된다.


그런데 이후로 인간은 언제나 경쟁하고 이기길 원했다. 가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은 아벨을 죽인 것은 불붙는 경쟁심과 열등감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인류는 전쟁의 폭력적 수단만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통해서도 경쟁해 왔다. 무엇에서든지 사람은 평가하고 판단하면서 우열을 가리고 늘 일등에 목말라 하고 앞서기를 원한다.


교회와 성도도 다르지 않다. 크고 많고 높은 것을 귀하고 좋은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사렛이라는 촌에서 성장하셨고, 갈릴리라는 변방에서 사역하셨다. 부활 이후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않으시고 갈릴리 해변에서 제자들의 아침상을 차리셨다.


세상은 이기려고 사는 게 아니다. 함께 사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죽고, 죽은 후에 누구나 하나님 앞에 선다. 심판의 자리에서는 세상에서 일등을 한 경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 누구를 어떻게 돌보며 어떻게 함께 살아왔는지가 평가의 기준일 것이다. 세상은 정복하는 욕망이 아니라 함께 사는 열정이 변화시킨다.


이기고 정복하며 지배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돕고 돌보며 사랑하는 것이 창조주의 뜻이다. 일 등이 되었다면 더 많은 책임감으로 인류에 이바지해야 하고, 부유하다면 나눌 줄 알아야 한다. 함께 어우러져 사랑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하시는 모습이다. 사람이 만든 인공지능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을 넘어설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앙칼럼16_0708.JPG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