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30 16:39
해마다 여름이면 고등학생 구호팀이 아이티 고아원을 방문한다. 십여 명의 고등학생들로 구성된 팀은 각자 악기를 가지고 고아원에 가서 연습한 곡들을 연주하고, 아이들과 춤도 추고, 아이티 언어인 크레올로 노래도 부른다. 풍선도 불고, 얼굴에 그림도 그리고, 폴라로이드 사진도 찍으며 신나게 노는 것이다. 구호 식량을 전하고 의약품도 챙겨주고 옷가지에 신발에 치약 칫솔과 학용품도 나눠준다. 준비해간 점심도 나눠 먹고 잠깐이지만 열심히 같이 논다. 아이티 고아들에게 할 일도 없고 아무도 찾지 않는 시간, 햇볕만 쨍한 여름 한낮에 잠시라도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자고 시작한 일이다.
지난달에도 열한 명의 학생을 포함한 열여덟 명이 구호팀으로 아이티 고아원을 방문했다. 2010년 지진 이후 올여름으로 일곱 번째 학생팀이었다. 바이올린, 플룻, 클라리넷, 하모니카, 리코더, 키보드, 탬버린 등으로 가는 고아원마다 작은 콘서트를 열었다. 많을 때는 오십여 명, 적으면 스무 명도 채 안 되는 어린 청중들을 앉혀놓고 땀을 흘리며 곡을 연주하면 아이들이 집중해서 듣고 크게 박수를 쳐준다. 화씨 백 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날씨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면 처음에는 어색해하다가 시간 지나면 춤을 더 추자고 조른다. 사진도 찍고 음식도 나눠 먹으면서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가 아이티 고아들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아동병원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아기 환자들에게 흰 죽 같은 아침 식사를 먹여주면서 대부분의 학생이 슬픔을 느낀다. 아무리 오래 안아도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정말 새털처럼 가벼운 아기 환자들을 안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면서 울기도 많이 운다. 중증 장애아들이 있는 고아원에서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슬픔을 삼키기도 한다. 장애 고아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다 보면 목이 메 자주 박자를 놓치기도 한다.
우리 팀은 아이티에서 사역하는 동안 매일 저녁 묵상과 나눔의 시간을 갖는다. 두 달 동안 여러 가지 훈련을 받고 이 일에 참여하는 고등학생들은 생전 처음 보는 열악한 환경에 놀라고, 고아들의 맑고 예쁜 모습에 더 놀란다. 그 안에서 슬픔을 느끼기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갖는다. 고아들의 삶을 직접 보면서 학생들은 새삼 감사와 삶의 목표를 생각한다. 함부로 살지 말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고 낭비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도 한다. 하루를 돌아보면서 자기 생각을 나누는 시간에 11학년 여학생이 장애아 고아원을 다녀온 날 느낌을 말했다.
“미안해요”
아이티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이라는 시티 솔레에서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을 보고, 여전히 이런저런 이유로 먹는다는 진흙쿠키도 맛보고, 아동병원에서 영양실조 걸린 환자도 만나고, 중증 장애아들의 해맑은 웃음 앞에 서보면 사는 게 정말 미안해진다.
기운 없어 절대 뛰지 않는 아이들이 박수를 쳐주고 함께 춤을 출 때면, 우리가 고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인지 고아들이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인지 구별이 되질 않는다. 그 안에서 우리는 정말 ‘미안함’을 느낀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아이티에 간다. 그런데 이제 새삼스레 깨닫는다. 더 미안해야 한다. 에어컨 나오는 숙소에서 밝은 불빛 아래 성경을 펴놓고 기도하다가 고아들에게 미안하다. 그 밤 찌는 듯한 열대야를 견디며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넉넉지 않았음이 틀림없는 이른 저녁을 먹고 누웠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미안하다. 한 접시 스파게티로 시작해 옥수수죽으로 때웠을 하루 두 끼 식사가 미안하고, 달러 스토어에서 사간 일 달러짜리 샌들이 미안해진다. 까닭 없이 이렇게 사는 게 미안하다.
오늘도 문득 “미안해요.” 소리가 가슴 속에서 큰 파도가 되어 일렁인다. 멀미를 참듯 가만히 심호흡하면서 고아들에게도 미안하고, 그 고아들을 돌보라고 우리에게 맡기신 하나님께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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