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추석을 앞두고 한국의 모 일간지에 나희덕 시인이 쓴 칼럼의 제목이다. 명절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 중에는 아이를 잃고 2년을 넘는 시간을 길바닥에서 보내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도 있다고 했다. 부당해고에 맞서 인권위원회 광고탑에서 1년을 넘게 고공농성을 벌인 노동자 두 사람이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집에 가지 못한다고 했다. 노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자녀가 줄줄이 있는 가정을 책임져야 할 가장이 집에 가지 못한 것이다.


어릴 때, 명절이면 선물을 양손에 들고 고향 집 마을길을 환하게 웃으며 걸어가는 가족들 사진을 신문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때로는 부담도 되고 짜증이 나는 귀향길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돌아갈 집, 고향이 있다는 사실은 부산한 현실에 여유와 안식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집(Home)이라는 단어를 평안, 행복과 동일시해왔다. 집 혹은 고향은 정신적 신체적 유산을 함께 지닌 실체적 공간으로 우리 삶의 근원을 제공해왔다. 명절에 돌아갈 집은 어떤 처지에 있는 사람이든지 기쁨과 반가움, 평안과 안식, 공유와 소통을 누리게 한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믿음 가운데 사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집이 있다. 우리가 흔히 ‘본향’이라고 부르는 천국의 집이다.


천상병 시인은 그의 시 ‘귀천’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했다. 이 땅에서 삶이 끝난 후 돌아가 이 땅의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은 삶을 풍성하게 채우는 복이 틀림없다. 돌아갈 곳이 있고, 가고 싶은 소망이 있고, 그 소망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이 있으므로, 언제든 돌아가면 따뜻하게 환영받을 집이 있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물론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도 누리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하나님 나라, 천국, 내 본향은 삶과 죽음을 연결하여 우리에게 돌아갈 집에 대한 믿음으로 이 땅에서의 삶을 한 차원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예수를 구주로 믿는 이들을 따스하게 맞아줄 집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집이 영원한 복락을 약속한 천국이라는 것은 믿는 이들의 특권이며 은혜이다.


큰 명절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처지에 마음 아픈 공감을 나누다 보면, 해 저물면 돌아가 쉴 집이 있다는 것은 큰 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땅에서 삶을 마치고 떠날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처럼 커다란 위안은 없다.


나희덕 시인은 칼럼에서 2년여를 길바닥에서 보내는 세월호 유족들 생각에 슬프다고 했다. 삶의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의 대가로 추석에 집에 돌아가지 못한 농성 근로자들의 신산한 삶에 마음이 아리다고 했다. 맞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밥상 앞에 앉았을 때, 텅 빈 쓸쓸함만 가득한 거리에서, 비좁은 옥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슬프고 아린 일이다.


다른 이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삶의 변방에서 고단한 눈물을 삼키는 이들을 늘 위로하셨다. 세월호 유족에게, 옥에 갇힌 근로자에게 손 한 번 내밀어 위로하는 일처럼, 예수의 제자로 사는 일은 어려운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지 못하는 일에 부담을 느끼고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믿음의 울타리 밖에서 허망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을 하늘로 돌아가 쉴 천국으로 인도하는 일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은혜이다. 한여름 무성했던 만물이 뿌리로 돌아가는 가을이다. 이 가을에 진심으로 모든 사람이 고향, 집의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환하게 웃으며 돌아갈 집이 이 땅에서 뿐 아니라 죽어서도 마련돼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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