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칼럼> 길을 잃었다 (16_1028)

2016.10.30 20:26

admin 조회 수:4885

가을 깊어가는 토요일 오후. 캔버스를 가득 채운 화려한 유화 같은 단풍에 빠져 숲으로 난 길로 들어섰다. 화사한 가을 오후의 낭만이 미풍에 춤을 추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은 눈 부셨고 돌멩이 하나도 정겨웠다. 그렇게 땅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가득 채운 자연의 풍요를 누린지 얼마를 지났을까. 적막한 숲에서 길을 잃었음을 깨달았다.


스마트하다는 전화기의 신호도 운명을 다 한 맥박처럼 약해져 어느 곳과도 연결되지 않았다. 갑자기 온 숲이 똑같은 모양을 하고 둘러서 있었다. 낙엽도 돌멩이도 풀 한 포기도 다 똑같아 보였다. 한 폭의 그림 같던 숲이 길 없는 정글이 되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생각해보았다. 어디서부터 잃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큰 바위 하나를 돌아오지 않았던가. 꺾어진 가지를 껑충 걸음으로 넘어오지 않았던가. 동서남북이 구분되지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모든 숲의 모양이 똑같아 보이는지 헤어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초조했다. 갑자기 입술이 타는 듯 입이 마르고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졌다. 모든 것이 길처럼 보이는 순간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길을 잃었다. 토요일 오후 해가 지고 있다. 숲은 어둠으로 덮여 길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러다가 영원히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서서히 현실이 되어 온몸을 감싸고 있다.


나라가 길을 잃었다. 나라는 방향을 잃고 침몰하는 배에 갇혔다. 어디선가 분명히 잘못 들어선 지점이 있을 터인데, 찾으려는 노력도 없이 모두가 잃어버린 길에 대한 얕은 변명뿐이다. 길을 잃고 눈이 먼 사람들이 서로 나서서 나라를 이끈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전대미문의 인물들이 나라를 다스려보겠다고 나서서 의식 있는 사람들을 한탄하게 한다. 아이들에게 설명하기에는 말하기조차 부끄러운데 자신의 허물에 눈 감은 이들이 자신이 나서야만 나라가 제대로 된다고 한다. 나라들이 길을 잃고 있다.


교회가 길을 잃었다. 길 잃은 백성을 인도해야 할 교회가 길을 잃었다. 길 잃은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할 교회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허둥거리고 있다.


진리는 좁은 문, 좁을 길을 가리키는데 교회는 넓은 길, 편안한 문으로 들어가려고 스스로 합리화하다가 길을 잃었다. 교회의 탐욕은 불의를 품고 의를 덮어버렸다. 성적인 문제에 당당하지 못한 곳도 교회이다. 돈을 놓고 싸우는 곳도 교회이다. 돈과 건물이 사람들 사이를 가르고 길을 막는다. 예수님은 결코 많은 무리, 큰 건물을 바라신 적이 없다. 교회에서 예수님이 떠나신 지 오래되었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 대신 자신들의 욕망으로 자리를 채웠다.


교회는 더는 회개를 가르치지 않고, 좁은 길을 가르치지 않는다. 삶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말씀은 능력이 없어 사람을 변화시킬 수가 없다. 그 말씀을 강권하지 않은 지 오래다. 교회가 길을 잃으면 세상이 어두워진다. 그런데 세상은 돌아가는데 교회가 불빛 꺼진 암흑 속에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길을 잃고도 길을 잃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세상 법정의 판사가 교회의 갈 길을 지도하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아무도 교회가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적인 문제를 일으킨 자들도, 부정과 편법과 불법을 일삼은 자들도 고개를 뻣뻣이 들고 하나님의 용서를 부르짖고, 불의를 감싸는 자들이 교회의 어른행세를 하고 교회의 대표자 노릇을 하고 있다. 자리를 다투고 건물을 높이다가 결국 진리를 잃었다. 쾌락과 욕망과 권세를 좇다가 믿음과 진리를 버렸다.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다. 맞다. 하지만 교회가 길을 잃은 것은 부인할 수 없고, 그것은 모든 믿는 자들의 책임이다.


예수님은 낮은 곳에서 길을 보여주고 계시는데, 높은 곳에 올라가 목을 빼고 아무리 길을 찾은 들 찾아질 리가 없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곧 길이요...” 그 길로만 가면 되는데 낮아지지 못해서 갈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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