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0 06:51
일감을 찾으러 나간 아버지는 온종일 빈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골목 모퉁이 허름한 가게에서 가장 싼 커피 한 잔과 빵 한 조각으로 허기를 채우고 뿌옇게 밝아오는 하루를 시작했다. 일거리를 찾아 나왔던 동향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꾼을 찾는 이들을 따라 떠나면서 이른 오전에 이미 사람들이 반 넘어 빠져나갔지만, 아버지는 점심시간이 가까워져도 일을 줄 사람을 만나지 못한 채 쌀쌀해지는 오후를 맞았다.
오늘은 어떻게든 일을 해서 일당을 벌어야 한다. 식당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아내는 오늘도 한숨을 가득 지고 나갔다. 거의 일주일 째 좋아하는 학교도 못 가고 누워 있는 막내 감기약도 사야 한다. 둘째 신발도 너무 낡아 물이 새더니 바닥이 떨어진 것을 어제 보았다.
오후 2시가 넘었다. 일꾼을 찾는 사람이 와서 몇몇을 데려갔다. 거리에는 오늘 일을 놓친 사람들이 드문드문 말없이 서서 구름 낀 겨울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시간조차 지쳐 무거운 짐이 되고 남겨진 사람들은 말을 잃어간다.
땅거미가 점령군처럼 도시를 덮기 시작했다. 이제 돌아가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머뭇거리며 혹시나 하면서 어두워지는 먼 길을 바라보는데 낮에 일꾼을 데려갔던 사람이 와서 손짓으로 불렀다. 청소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얼마를 줄 거냐고 묻지 않았다. 일하러 가는 길에 왜 여태껏 여기 있느냐고 그 사람이 물었다. 그냥 웃었다. 몇 사람이 일하는데 마무리를 빨리하려고 손이 더 필요했던 듯했다. 일은 두 시간이 채 못돼서 끝났다.
일을 시키던 사람이 한 사람씩 돈을 세어 주자 하루 일당을 받은 사람들이 씩씩한 발걸음으로 왁자지껄하면서 골목을 빠져나갔다. 아버지 차례가 됐다. 두 시간도 채 안 되게 일했다. 그런데 그이는 일한 시간을 묻지 않고 하루치 일당을 주었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을 뻔했다. 돌아서 나오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하루치를 벌었다. 꺼져가는 촛불이 환해지는 듯했다. 그 일당은 아버지에게 생명이었다. 약을 사고 싼 신발 한 켤레를 사줄 수 있게 되었다. 저녁이면 반값에 파는 빵을 서너 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 사람을 만난 것을 은혜라고 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지 늦은 밤에 일에서 돌아온 어머니에게 희미한 전등을 켠 식탁에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그 하루, 아버지는 기쁨과 감사와 은혜로 감동해서 얼굴의 주름조차 펴진 것 같았다. 그리고 평안한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또 은혜를 누릴 것 같은 꿈을 꾸었다(마태복음 20장 1~16절).
저녁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매일 매일 저녁은 모든 이에게 다 다르다. 오늘 저녁 아버지는 은혜로 식탁을 채웠다. 그리고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저녁을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 모든 인생에는 저녁이 있다. 그러나 그 저녁을 채우는 불빛은 저마다 다르다.
한 해의 저녁이다. 하루가 어떠했는지 기억하고 돌아보아야 하듯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세상은 말할 수 없이 시끄럽고 혼란한 저녁을 보내고 있는데, 이 시간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였는지, 이 한 해 동안 누굴 만났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의 믿음은 이 한 해 동안 어떤 은혜를 누려왔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저녁은 평안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즈넉한 여유가 되기도 한다. 함성이 되기도 하고 감동이 되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좌절이 되기도 한다. 그 저녁이 풍요롭고 평안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그분을 만나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주인.
성탄절이 두 주 남짓 남았다. 오늘 저녁에 아버지가 만났던 은혜를 누리려면 그분을 만나 그분의 은혜로 생명을 채워야 한다. 아버지의 저녁이 풍성했듯이 우리에게도 이 계절이 풍성한 생명의 은혜를 만난 저녁이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