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바를 찾습니다


사울이 회심했다. 예수를 따르는 무리를 핍박하는 일에 앞장서 가담했던 사울이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을 잡으러 다메섹에 가다가 예수를 만났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음성에 충격을 받고 마침내 회심했다. 예수를 믿게 된 사울은 거꾸로 핍박받는 처지가 됐다. 그는 아라비아 광야에 가서 3년을 지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제자들과 교제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를 환영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회심을 의심했고, 그의 전력을 생각하며 그를 두려워했다. 그때 사울을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한 사람이 바나바였다.


위로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의 신망이 두터웠다. 그는 회심한 사울과 사도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교제의 물꼬를 트게 해주었다. 그 후에 사울은 고향 다소로 돌아가 13년을 거주한다. 예수 핍박자에서 예수의 제자로 회심한 사울에게 그 시간은 어쩌면 인고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그때 사울을 다시 찾아온 사람도 바나바였다.

바나바는 안디옥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면서 다소의 집에 칩거하고 있는 사울을 데려와 동역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사울과 함께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 우리가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이라고 하는 선교 여행을 떠난다.


훗날 바울이 된 사울의 인생 고비마다 바나바는 위로자요 안내자의 역할을 해준 것이다. 바나바는 바울 인생의 깊은 계곡이나 어두운 시간마다 길잡이이며 등불이었다.


바울은 후에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바른 신학 위에 바른 신앙을 세우도록 성도들을 가르쳤다. 신약성경의 삼분의 일을 기록하고, 초대교회 교리 정립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했다. 기독신학의 토대를 다진 것도 바울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울이 평생 바나바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만나는 이들의 인도자가 되었고 위로자가 되었다. 인생의 고비에서, 신앙의 갈림길에서 갈등하던 이들을 예수의 길로 인도했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을 생각하고, 사람들을 격려했다.


처음 교회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던 막막한 시간, 신앙에 회의가 생길법한 길고 어두운 인생의 시간이 있었다. 드러낼 수 없어 감춰진 등불로 살던 때, 신앙을 추스르지 못해 간절했던 인생의 고비마다 바울에게는 바나바가 있었다. 그는 바울에게 신앙의 동역자이며 격려자였고, 후원자이며 안내자였다. 사랑이었고, 힘이었으며, 어둠 속의 등불이었다.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도 때때로 인생과 신앙의 고비가 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에게는 바나바가 필요하다. 바나바가 바울을 인도하고, 바울이 후일 바나바처럼 또 사람들을 위로하고 인도했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사랑을 잃고, 사람을 잃고, 엷은 신앙마저 바람결에 흔들리는 사람을 위해 따스한 위로와 등 두드려주는 격려를 나눌 바나바가 필요한 것이다. 처음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이의 손을 잡아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리 잡게 해 줄 이가 필요하다. 인생의 갈림길에 선 이들에게, 좌절의 깊은 늪에서 고통 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힘을 줄 바나바가 필요하다.


모든 이에게는 자신이 알든 모르든 살아오면서 만났던 바나바가 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바나바는 인생의 고비마다 사랑과 능력으로 동행해 주었다. 비록 희미한 기억 저편으로 가뭇없이 사라진 것처럼 잊기도 했지만, 바나바는 고비가 많았던 내 인생에도 있었음이 틀림없다.


이제 스스로 묻는다. 나는 누구의 바나바인가? 바나바가 필요한 시대에 교회는 무엇인가? 갈 길을 인도할 등불이 필요할 때, 눈물을 닦아줄 이웃이 필요하고 배고픔을 채워줄 사랑이 목마를 때, 아픔을 위로할 따스함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를 위해서 교회가 존재하고 성도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바나바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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