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 걱정을 했다. 열흘을 넘게 쌀이 없는 상황이 지속됐다. 학교도 문을 닫은 연말연시에 길기만 한 하루가 매일매일 침묵 속에 흘렀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고아원은 여전히 뜨거운 햇볕으로 가득했다. 일주일 동안 마흔여덟 명의 아이들이 작은 양배추처럼 생긴 열매를 끼니마다 몇 조각씩 나눠 먹었다. 다음 며칠은 거의 물만 마셨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눈물도 나지 않았다.


소설가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썼다. “끼니때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끼니때는 쉼 없이 넘어오는 점령군처럼 고아원을 휘저었다. 아이티의 깊은 시골 고아원은 그렇게 무서운 끼니를 맞닥뜨리며 침묵 속에 더디 가는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매월 식량을 공급하지만, 자라는 아이들의 입을 계산하면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일정량의 식량을 가지고 한 달을 살기 위해 잘 나누어야 하지만, 늘 허기진 고아들 앞에서 냉정하게 먹거리의 양을 날짜별로 분배하고 조절하는 기능은 무력하다. 게다가 현금이 급할 때, 있는 쌀을 시장에 내다 팔기 때문에 쌀은 늘 모자란다.


아이들이 아프다. 고아들에게 복통과 탈장 증세가 심하다. 제대로 정수되지 않은 물을 지하에 판 저장 탱크에 담아 허드렛물로 써야 하지만 그 물을 두레박으로 퍼서 그냥 마신다. 맑아 보이지만 깨끗하지 않은 물이다. 콜레라도 끊이지 않는다.


피부병은 손대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빤 적이 없는 듯한 낡고 큰 티셔츠를 벗기자 오랜 굶주림으로 앙상한 뼈를 덮은 피부 위로 부스럼과 종기가 가득했다. 피부 연고를 바르며 박박 긁었다. 아이들은 표정이 없었다. 씻지 않아서 피부병이 생긴다. 연고만 바르면 한 번에 치료될 종기도 그냥 두어서 눈을 못 뜨기도 하고 팔을 펴지 못하기도 한다.


열병도 타이레놀 한 알이면 나을 텐데 그냥 두어서 결국 목숨을 잃는 아이도 있었다. 불결하고 좁은 환경에 함께 수용되어 있다 보니 한 아이가 열병이나 피부병을 앓으면 순식간에 많은 아이가 같은 증상에 시달린다. 먹고 바르고 싶어도 약이 태부족이다. 대략 계산을 해서 넉넉히 약을 사다 주어도 구급약 상자는 늘 빈 통이다.


어제(12)로 대지진 참사 칠 주년이 지났다. 아이티 고아원을 다닌 지 구 년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이티가 생소한 단어가 되어가고 있는데, 아이티 고아원은 여전히 배고프고 아픈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망이 있다면 공부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름을 쓰고 숫자를 센다. 마당에 천막을 치고 낡은 베니어판을 가져다 칠판 삼고, 한 자리 덧셈 뺄셈도 간단하지 않아 머리를 감싸고 문제를 풀어보지만 그래도 배운다. 공책에 삐뚤빼뚤 글씨를 쓰고, 목소리를 높여 알파벳을 외운다. 오랜 세월 찌든 가난을 벗어날 길은 배우는 것밖에 없다고 믿는다. 나아지는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대지진 후 칠 년이 바람처럼 흘렀다. 조금씩 아주 천천히 나아지고 있다. 세월은 끊어서 계산되지 않는다. 이제까지 살아왔으므로 또 이렇게 쭉 살아갈 것이다. 그 안에서 또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고, 하늘만 바라보고, 어느 날 저녁에는 또 물만 마시고 잠들지도 모르지만, 소망의 끈을 놓지 않고 새해를 시작할 것이다.


칠 년 동안 마치 칠 인치쯤 전진한 것 같다. 앞으로도 그렇게 더디게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살아계시므로 반드시 나아지리라는 소망을 믿음으로 품는다. 칠 년 후에는 칠십 마일쯤 전진할 수 있을까?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야고보서 127)


새해에는 우리가 조금 더 정결하고 경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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