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사랑하는 친구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였다.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삼 남매는 예수님으로부터 하늘을 덮을 만한 사랑을 받았다. 남매들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 또한 남달랐다. 마르다는 항상 예수님과 그 일행을 극진하게 대접하였고, 마리아는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기도 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를 때마다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동네인 베다니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머무셨다. 그들은 예수님께 형제였고 가족이었다.


그토록 사랑을 나눈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흘리신 그 눈물에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슬픔이 담겨 있었다. 영생하도록 지음 받았으나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른 인간의 비참에 대한 비통함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 때문에 우신 것만이 아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며 통곡하는 이웃들을 보고 우셨다. 오라버니의 죽음 앞에 통곡하는 마리아, 나사로의 안타까운 죽음과 남겨진 마르다 마리아에 대한 깊은 연민으로 슬퍼하는 이웃들을 보며 예수님은 함께 가슴 적시는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께서 웃었다는 이야기는 성경에 없다. 늘 기뻐하고 웃고 계셨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께서 세 번 우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고 우셨고(요11:35), 무너질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내다보고 우셨다(눅19:41).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께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히브리서는 기록했다(히5:7).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당연히 살아날 것을 알고 계셨고, 또한 살리실 계획으로 무덤 앞에 섰지만, 깊은 사랑 가운데 인간의 죽음과 슬픔에 눈물로 동참하셨다. 예루살렘 성의 파멸을 눈앞에 그리면서 긴 역사 속에 무너지는 잔해들 위로 지워지지 않을 하나님의 눈물을 남기셨다. 사람의 죄를 아파하시고 파멸로 치닫는 인류의 역사에 비통해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의 아픔과 슬픔에 눈물로 공감하셨다.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눈물이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시고 심히 좋았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사람을 위해 우셨다. 아름다웠으나 부패하여 죽어가는 인간을 위해 우셨다. 인격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감정을 따라 인간의 아픔에 공감하고 슬퍼하며 우시더니 마침내 십자가가 되었다. 슬픔의 눈물이 십자가의 핏방울이 되었다.


다른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눈물은 치유의 능력이 있다. 상실을 소망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 다른 사람의 슬픔을 내 슬픔처럼, 다른 이들의 기쁨을 내 기쁨처럼 느낄 수 있는 능력, 공감 능력이라고도 하는 이 감정공유의 능력은 성숙한 인간의 한 증거이기도 하다.


특별히 사람의 눈물에 공감하는 심성이야말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품성이기도 하다. 성도는 예수를 믿고 예수 닮기를 소망하며 이 땅에 산다. 성도는 하나님의 눈물로 은혜를 누린 사람이다. 그 눈물의 치유와 회복의 능력을 누리는 이들이다. 이 땅에 살면서 우는 자들과 함께 울 줄 아는 사람이다. 한줄기 눈물로 큰 강물을 이루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다. 다른 이들의 아픔에 함께 흘리는 눈물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울어야 할 일이 많다. 고단한 이민자의 발자국에 하나님의 눈물이 고인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의 별빛 영혼 위로 쏟아지는 하나님의 눈물이 별이 되고 있다. 아이티 고아들의 칠흑 같은 어둠의 미래 속으로 하나님의 눈물이 강물이 되어 흐른다. 가난한 영혼의 애통이, 삶의 가난과 아픔의 무게가 한 방울 눈물이 되어 흐른다. 그 속에 하나님의 눈물도 흐른다.


눈물은 슬픈 자들과 하나님의 공용어이다. 오늘 슬픈 사람이 많다. 하나님도 슬픈 사람,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을 눈물로 문안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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