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의의 여러 기본을 세세하게 지시하시는데 그 중에 화목제가 있다. 화목제는 소 한 마리를 드려도 피와 기름과 허리부근의 내장 등 제물의 일부만 태우고 사람들이 다 먹어야 한다. 게다가 기한이 있다. 하루나 이틀만에 다 먹어야 한다. 레위기 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신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 희생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그러나 그 희생의 예물이 서원이나 자원의 예물이면 그 희생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소 한 마리가 장성하면 아무리 작아도 600kg이다. 1000파운드가 훨씬 넘는다. 무슨 재주로 소 한 마리를 하루, 혹은 이틀 만에 다 먹겠는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을 섬기는 제사를 원하신 것이다. 이 고기를 정한 기한에 다 먹지 않으면 제사는 무효가 되었다. 화목제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과의 교제와 나눔도 제사로, 예배로 승격시키셨다. 

1000파운드가 훨씬 넘는 양의 고기를 다 먹으려면 사람을 가릴 수가 없다. 인근의 사람들이 다 먹어주어야 한다. 한 마을 전체, 또는 성전 주변의 모든 이들이 모여 잔치를 벌여야 하는 것이다. 이 제의를 통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은 진실한 감사와 서원에 담긴 사람 사랑을 가르치시려는 것이다. 

이 화목제를 통해 원수와도 화해하고, 그동안 별 교제가 없던 이웃과도 자리를 함께해야 하는 것이다. 낯선 타인이라도 함께 해야 한다. 그 많은 고기를 강제적으로 정해진 빠른 시일 내에 소비해야 한다면 누구든 불러 함께 먹는 것 외에는 길이 없는 것이다. 

이 화목제의 정신은 초대교회에 만찬과 교제로 이어진다. 노예조차 형제로 받아들이고, 예수 안에서 아무런 차별이 없어 부자와 가난한 자가 구분되지 않는 예배와 교제의 자리가 마련되는 것이다. 먹고 마시는 모든 일에 차별이 없으며 누구든 친교의 자리에서 오직 예수를 믿는 다는 것 때문에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되었다. 

분명 대다수가 기독신앙을 가졌음에 틀림없을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노골적인 시위와 폭력을 행사했다. 피부색으로 구분해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하고 위협했다. 대통령마저 저들의 편을 들고 있다. 뼛속까지 백인우월인 자들의 천박한 기독정신은 노예착취와 인디언 몰살의 역사에서 이미 그 바닥이 드러난 바 있다. 원주민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주일이면 화려한 옷으로 치장하고 예배당에 앉아 예배를 드렸다. 흑인 노예의 손을 자르고 몸을 상하게 하는 고문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 다음날 하나님을 높이며 예배드렸다. 오랜 세월을 흐르며 빛바랜 청교도 신앙은 백인우월주의의 방패막이가 되었고 예수의 기독정신은 난도질당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자신 외에는 군대에 상급자가 두 명 밖에 없다는 육군 대장 장로와 부인 권사가 갑질의 대표가 되었다. 냉장고가 10개였다고 한다. 썩어서 내버릴지언정 함께 사는 공관병에게 주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들의 안락을 위해 남의 귀한 자식을 노예보다도 못하게 부렸다. 그리고 주일날에는 종교 불문하고 공관병들을 강제로 데리고 교회에 갔다고 한다. 예수 믿는 일을 이처럼 부끄럽게 할 수 있는지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웃과의 나눔과 섬김으로 잔치의 자리를 마련해주시려 했던 하나님의 화목제는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 속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은혜이지 벼슬이 아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사랑과 섬김이지 우월감으로 뭉친 폭력이 아니다. 

문득 소 한 마리 잡고, 흑인이든 아시안이든 백인이든 가리지 않고 벌이는 잔치의 화목제, 감사와 나눔과 사랑의 화목제가 오늘 이 땅에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중앙일보 종교칼럼 - 17_08 화목제가 필요한 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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