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2 18:24
<중앙일보 종교칼럼 - 삶과 믿음>
참지 말고 울어라
조항석 목사
뉴저지 뿌리깊은교회 담임목사
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
추베니까의 손목이 부러졌다. 아이티 수도 포토프린스에서 한 시간 반 떨어진 까프의 삼송고아원에 있는 15살 여자아이다. 손목이 부러져 병원에 갔는데 수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만 듣고 돌아왔단다. 병원비는 8백 불 정도라고 했다. 얼른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수술을 시키라고 하고 송금을 했다. 그리고 두 주 후에 고아원에 갔다. 추베니까는 아직 손목이 부러져 부어 있는 채로 있었다.
수술비용을 보냈는데 왜 안 했느냐고 물었다. 보내준 수술비는 공립병원에서 수술하는 비용인데 공립병원에서 수술하려면 6월에나 된단다. 당장 수술을 하려면 사립병원에 가야 하는데 거기는 수술비가 1천5백 불이 든다고 했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현지 스탭은 이해가 안 되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당장 수술하려면 돈이 더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고아원 원장은 어깨를 으쓱하고 그만이었다.
나무판자도 없어 두꺼운 상자 조각을 찾아다가 부목을 대고 목에 두르고 다니던 반다나를 풀어 움직이지 않게 묶어주었다. 그리고 부러진 손목을 붙들고 기도하다가 울었다. 아이의 아픔이 우리의 눈물이 되었지만 정작 아이는 부러져 아픈 손목을 하고도 울지 않았다.
같은 고아원의 조셉은 다섯 살이다. 식사기도를 할 때 제일 예쁜 사내아이다. 지난달에 보니,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배꼽 주위가 심하게 앞으로 나와 있었다. 탈장이다. 재작년 말에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수술해야 한다고 하고는 아무 연락이 없다고 했다. 수술비용이 얼마쯤 든다는 연락이 없으니 그냥 시간만 보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진찰하고 수술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지만, 고아원에 돈이 있을 리 없으니 연락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무료로 치료해주는 곳도 많이 있다고 하는데, 찾기도 어렵고, 찾아서 가도 모두 가난하고 급한 환자들뿐이라 약속을 잡기도 어렵다. 게다가 고아들은 부모도 없고 힘을 다해 무료 병원이라도 쫓아다녀 줄 어른도 없다.
중증 장애아들이 있는 고아원이 아니라도, 고아원마다 당장 병원에 데려가야 할 아이들은 넘쳐난다. 장애 고아원을 이사시켜준 해 가을에 다섯 살 된 아이 하나가 하늘나라로 갔다. 열이 나는 것을 그냥 두었다가 열병이 되고 폐렴이 되어 결국 장애로 산 다섯 해를 이 땅에 남기고 갔다. 삼송 고아원의 한 살 된 원장 조카는 아무 원인도 모르고 그냥 눈을 감았다. 그때 삼송 원장은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아이티 고아들은 울지 않는다. 아프지만 아프다고 울지 않는다. 운다고 해결되는 것이 없다는 것은 태어나서 가장 먼저 깨닫는 일일 것이다. 평소에도 잘 안 뛰지만, 아프면 더 조용해진다. 그게 전부다. 어디가 아프다고 울어야 하는데 울지 않으니까 겉으로 드러난 증상이 없으면 대부분 그냥 넘어간다. 그렇게 참고 지내다 보면 타이레놀 한 알이면 될 일을 시간을 놓쳐서 목숨을 잃기도 한다.
추베니까는 평생 불구의 손으로 살게 될지 모른다. 죠셉은 탈장이 자연 치유되지 않는 한 합병증을 앓게 될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아프다는 신음조차 삼키며 지낸다. 아픈 아이를 붙들고 기도하다가 우리는 울어도 아이들은 울지 않는다. 나는 그럴 때마다 소리 지르고 싶어진다. “울어, 참지 말고 울란 말이야.”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싶어진다. 시편의 시인이 하나님 앞에서 소리 지르며 악쓰듯 시를 쓴 것은 들어줄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갓난아기가 우는 것은 그것을 듣고 젖을 먹여줄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고통의 부르짖음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믿으면 소리 지를 필요도 없고, 울 수도 없다.
그러나 이제 이야기하고 싶다, 네가 울어야 하나님도 들으시고 우리도 안다고. 그동안 울지 못한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다음 주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면 말하려고 한다. “참지 말고 울어라. 하나님은 들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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