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칼럼> 조금 부담되게

2019.04.14 12:19

admin 조회 수:2624

<중앙일보 종교칼럼 - 삶과 믿음>

조금 부담되게

조항석 목사
뉴저지 뿌리깊은교회 담임목사
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

예수님께 찾아온 청년은 부자였다. 그는 부자이고 율법을 잘 지키는 관리였지만, 영생에 대한 목마름이 가시지 않았다. 예수님을 찾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영생의 길을 물었다. 율법을 다 잘 지켰다고 하는 청년에게 예수님은 한 가지를 덧붙였다. 가진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신 것이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풍족한 현실의 삶에서 하늘은 너무 먼 이상이었다. 재산이 많은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삭개오는 당시 유대인들이 증오하던 세무 공무원 중 우두머리였다. 그는 부자였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구원이 그의 집에 이르렀고, 그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셨다.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라고 가르친다. 심지어 야고보 사도는 가난한 과부와 고아들을 돕는 일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경건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남을 돕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돕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못 돕기도 하고, 돈이 있어도 어디다 어떻게, 얼마나 써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돕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이 더 어렵기도 하다. 성경에서 사랑 믿음 소망보다 더 많이 쓰인 단어와 주제가 돈인 것처럼,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에는 시간과 정성도 필요하지만 물질이 든다. 

달리 말하자면, 자선에는 물질적 희생이 따른다. 구제라고도 하는 자선은 기독교 도덕의 핵심이다. 하지만 얼마를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없다. 이에 관해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선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에 관한) 한 가지 안전한 기준은 우리가 여유 있게 줄 수 있는 정도보다 조금 더 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와 수입 수준이 같은 사람들이 안락한 생활과 사치품과 오락 등에 지출하는 만큼 우리도 그런 일에 돈을 지출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주는 양이 너무 적다고 할 수 있겠지요. 자선에 쓰는 비용 때문에 가계가 빠듯해지거나 제한받는 일이 전혀 없다면 너무 적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는 하고 싶지만 자선에 돈을 쓰느라 못 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루이스에 의하면 자선의 범위는 부담스러울 때까지이다.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은 남는 것으로 하는 게 아니라, 자선을 베푸느라 자신의 생활이 빠듯해지거나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제는 자기희생이 받침이 되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남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설 때가 있다. 예배조차 시간 남을 때 드리는 것처럼 착각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 말은 ‘하나님 먼저’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는 일에 얼마나 인색한지 모른다. 다른 일 다 하고 나서 하나님을 찾는다. 자선이나 구제도 마찬가지다. 쓸 것을 다 쓰고 나서 혹 남으면 나누는 자선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헌신이 아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한 분이 산불피해자들을 돕자며 페이스북에 남긴 글은 이렇게 끝맺고 있다. “... 이왕이면 조금 부담되게 많이 하세요.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왕이면 조금 부담되게 많이 하는 것이 바로 다른 이들을 돕고자 하는 구제의 기준이다.

일주일 후면 부활절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생명을 주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신 것이다. 예수 닮기를 소망하는 성도가 남에게 베풀 때 조금 부담되게 많이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온전히 흘러가게 하는 일을 보고 싶다. 우리가 조금 부담스럽게 나누어서 부활의 생명 가운데 따뜻함을 누리는 이웃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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