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7 20:37
<중앙일보 종교칼럼 - 삶과 믿음>
작은 도시락에 담긴 기적
조항석 목사
뉴저지 뿌리깊은교회 담임목사
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
예수님은 날이 저물자 광야에 모인 사람들의 끼니를 걱정하셨다. 먼 길을 따라온 사람들은 팍팍한 현실을 구제해 줄 기적에 대한 갈망과 영적 목마름의 경계에서 신세계와 같은 말씀에 시간을 잊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예수님의 말씀은 가슴을 적셨지만, 정작 배고픔은 질긴 현실로 남았다. 예수님은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기 어려워하셨다. 어둑어둑해지는 들판이었다. 곧 날이 저물면 추위도 올 것이다.
예수님은 군중의 끼니를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제자들인들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의 보잘것없는 주머니 사정에 이만 명의 사람들은 터무니없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제자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채근하셨다. 난감해진 제자들은 그곳이 들판이며 식당도 가게도, 그리고 돈도 없음을 차근차근 말씀드려야 했다.
그때 소년은 망설이고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도 들었다. 안드레가 혹시나 하고 먹을 것을 찾을 때 가슴이 뛰었다. 아침에 엄마가 싸준 도시락은 아직 그대로 있었다. 예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다가 먹는 것도 잊고 그냥 가지고 있던 터였다. 몇 차례 망설이던 소년은 돌아서는 안드레의 옷자락을 잡았다. 겨우 작은 빵 다섯 개와 손가락 두 개쯤 되는 절인 생선 두 마리였다.
소년은 잠시 후 예수님이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고 자신의 도시락을 나누어주시는 것을 보았다. 빵과 생선을 나누고 나누어도 줄지 않는 도시락은 모든 이들의 넉넉한 끼니가 되었다. 소년의 가슴은 벅찬 감격으로 가득 찼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그 사건은 소년의 인생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붙잡았다. 소년은 자랐다. 믿음도 함께 자랐다. 자신의 초라한 도시락을 놓고 사람들은 왕이 오셨다고 했고, 소년은 하나님이 오셨음을 알았다.
배불리 먹던 들판에서 왕이 오셨다고 떠들썩하던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가담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시체가 없어졌다는 소식에도, 소년은 놀라지 않았다. 몇 개월 후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하고 다니는데 그 무리가 점점 많아진다는 소식이 온 동네를 들썩이게 했다. 소년은 알고 있었다. 예수님은 진짜 하나님이셨다.
믿음은 은혜의 선물이지만, 체험은 더 큰 선물로 흔들림 없는 믿음의 버팀목이 되었다. 소년에게 보리 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는 그때 가진 것의 전부였다. 그 모든 것을 예수님께 드렸을 때 수만 명의 사람이 배불리 먹었고, 음식이 남았다. 도시락에서 나온 기적이었다.
애슐리는 더 코너 아이티 청소년 팀 중에 올해에 미술대학에 가는 학생이다. 지난해 애슐리는 12학년 바쁜 틈틈이 자신의 재능을 들여 그림을 그리고 가방을 만들어 팔아 그 수익금으로 우리가 후원하는 아이티 고아 모두에게 예쁜 에코백을 하나씩 멜 수 있게 해주었다. 애슐리는 자신의 재능을 나누어 고아들이 기쁨과 감사를 배우게 했다. 작은 가방에 담긴 사랑은 모든 고아들에게 기쁨을 나누는 기적이 되어 애슐리의 믿음과 우리 모두의 헌신에 은혜를 더했다.
기적은 헌신하는 자의 몫이다. 자신이 가진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쏟을 때 기적을 체험한다. 부자는 돈을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돈을 쓴 자이다. 돈은 쓴 만큼 부자이다.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은 돈이 있다고 하는 일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기적을 보여주기 위해 주어지는 기회이다.
초라한 도시락으로 수만 명의 끼니를 돌보신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가 우리 몫으로 준비한 우리의 도시락을 기다리고 계시지는 않을까? 그 도시락은 혼자 먹을 때보다 나누어 먹을 때 더 배부른 것을 사람들은 알까? 그날 유대 광야에서 소년이 만난 기적은 작은 도시락에 담긴 소박한 일상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