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6 19:20
설교일자 | 2016-0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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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계시록 3장 1~6절 |
설교자 | 조항석 목사 |
동영상주소 | https://youtu.be/UYdyxyvzwgw |
<오늘 설교 앞부분이 녹음이 되지 못했습니다. (죄송..) 그래서 녹음된 부분을 포함해서 원고를 올립니다.>
설교 _ 교회5. 사데교회, 정신차려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1~6절 말씀>
사데는 두아디라 교회에서 동남쪽으로 약 48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삼면이 절벽으로 된 천혜의 요새이구요. 오래도록 큰 전쟁이나 정복에 시달리지 않고 경제적 번성을 누렸던 도시입니다.
실제로 터키의 옛 나라인 루디아의 수도이기도 했습니다.
전쟁의 위협 없이 경제적 번성을 누리게 되니까 좀 안일한 삶을 사는 문화나 성격이 강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먹고 살만하면 별 긴장하지 않고 평안한 삶을 누리잖아요. 그런데 그보다 더 나아가 사실상 안일하고 나태한 삶이 있었던 도시가 사데입니다.
그곳에 요한이 세웠다고 알려진 교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소아시아 일곱 교회는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거의가 다 폐허로 남아 있습니다. 사데 교회는 그 중에도 교회와 바로 붙어서 아데미 신전의 큰 기둥들이 남아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요한이 세웠다고 알려진 교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부와 탄압이 없는, 이단의 침범이 없는 가운데 신앙적으로도 안일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주님이 사데교회에 보내시는 편지는 먹고살만하다고 안일한 삶을 사는 성도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이며 회복하라는 권면의 메시지입니다.
제가 뿌리깊은교회를 개척하면서 처음 생각한 것은 예배를 주일에만 드리고, 성경공부나 리더십 훈련도 주일이나 아니면 주중 하루 정도만 모이는 교회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예배로 모이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교회일 때문에 세상에 소홀하면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이고요, 실제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제 믿음입니다.
그래서 주일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대신에 주중에는 가정과 직장, 학교에서 정말 충성을 다하는 삶,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는 삶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녁에 교회에 모이지 말고, 가정에서 가족과 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삶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고요.
그러면 정말 환상적이고, 진실한 교회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냥 주일 하루 나와서 한 시간 예배드리는 것으로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이루기도 힘들고, 그저 면피용 예배 밖에는 되지 않아서 영적인 문제를 거론할 수준이 안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구절이라도 암송하고, 매일 아침 묵상을 통해 말씀과 기도를 연결하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말씀을 매일 묵상하고, 통독하고, 자신과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삶이야말로 부족한 예배와 모임을 보다 완벽하게 보완해 줄 유일한 영적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부산에 로고스서원을 운영하시는 김기현 목사님이 계십니다. 매주일 돌아가면서 성도들 집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주일예배 때 본문을 성도들이 주중에 집에서 최소한 10번 내지 30번쯤 읽고 옵니다. 어떤 때는 주중에 룻기를 서른 번 읽고 주일예배에 모입니다.
일주일간 묵상한 말씀을 쉐어링하지만, 때로는 설교를 듣고 그날 자신이 받은 은혜를 그 자리에서 그룹으로 나누어 이야기합니다.
주중에는 전혀 모이지 않습니다.
대신에 책을 공동으로 읽고 주일날 나누고, 성경을 읽은 것도 함께 쉐어합니다.
일주일 내내 어떻게 살았는지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복음 안에서 하나님 하신 일을 간증합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교회의 모델과 비슷하죠.
적어도 예배를 주일만 드리면서도 영적인 문제를 나눌 때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일 예배에도 모든 교우들이 학생과 싱글을 제외한 모든 성도들이 음식을 각자 해옵니다. 청년싱글들은 간식을 사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주일날 가정에서 모이지만 아무튼 교회에서 머무는 시간이 서너시간 됩니다. 그걸 즐기는 거예요.
음식은 여자분들이 준비하고, 설거지는 남자분들이 도맡아 합니다. 누구 하나 먼저 가는 사람이 없고 다 같이 모였다가 다 같은 시간에 헤어집니다.
형식을 갖춘 예배도 드리지만, 성령이 함께 하시는 교제와 나눔의 시간도 다 영적인 자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 시간이 끝나면, 친교이후는 하나님과 별 상관 없이 그냥 교회 아래층에서 하는 식사시간으로 치부하지만, 끝나고 성경공부 한다면 어떻게든 그걸 좀 빠져 나가려고 하지만, 그 교인들은 아예 주일예배 시간이 네 시간이다 딱 이렇게 못 박고 오는 거예요.
주중에 자발적인 독서 모임 등이 있지만 아무튼 예배는 주일만 드려도 넉넉한 영성의 깊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예배가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배는 질적으로 온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더 열심히 모이고, 이런저런 예배들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은 영적인 부족함을 보완하려는 데도 목적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이고, 내가 이렇게 믿으면 안되지, 오늘은 수요예배에 가야겠네, 오늘은 금요철야기도회에 가야겠네, 이번 주에 새벽예배 나가야 겠네. 하는 것이 영적 깊이를 더하고 목말라 하는 심령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 깊이를 고민하고 주일만 예배를 드리려면 성도들이 부지런해야 하고, 목사가 더 열심을 내야 합니다. 새벽예배가 없는 대신에 매일 이른 아침 말씀을 묵상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매일 아침 묵상 메일을 보내는 것도, 그런 생각의 한 축을 담당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모이는 일이 적으면 안일해지기 쉽기 때문에 더 열심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사데교회는 먹고살만해서 걱정이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는 재정적으로 넉넉했을 것이고, 성도들 가정마다 경제적이나 사회적인 문제는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쉽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별로 기도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들 간의 교제도 세상적인 풍조를 따르게 되고, 안식일을 지난 주일에 모여 사도들의 강론을 전해 듣고, 기록된 예수님의 행적을 읽어가면서, 구약 성경이 가리키는 성자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깊이도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절박한 상황이 때로 건강하게 합니다.
너무 늘어지면 건강을 해칩니다.
영적인 건강도 그렇습니다. 진심으로 안타까움과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과, 이만하면 됐다는 사람은, 말씀을 읽어도, 기도를 해도 차이가 있습니다.
한동안 저희가 장소 여건상 토요일 새벽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토요새벽예배를 드리기도 했는데요, 요즘은 장소 여건상 주중에 새벽에 모일 수 없기 때문에 새벽예배가 없지만, 혹 앞으로 그런 형편이 된다고 하더라도 꼭 새벽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훈련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요즘 꽤 오랫동안 매일성경을 단체로 나누어드리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대부분이 안 하기 때문에 안 드리는 거거든요. 물론 제가 매일 아침에 묵상메일을 보내드리는 것도 여러분께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만, 실제로는, 여러분, 그게 저 자신에게 먼저 큰 유익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라기는 여러분, 습관 되면 아주 좋은 일입니다. 매일 아침 묵상을 거르지 말고 하시기 바랍니다. 그냥 한 줄 성경을 읽으시고, ‘매일성경’ 책이 한권에 6불쯤 하거든요. 그게 두달치입니다. 그러니까 한 달에 3불, 하루에 10센트인데, 처음에 묵상이 어려우면 그냥 매일 성경을 들고 본문 한 번 읽고, 설명 한 번 읽고, 기도하는 그런 훈련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영적으로 게을러지면 모든 것이 편안한 거 아세요? 영적으로 나태해지면, 모든 것이 편안해집니다. 그게 영적인 안일인데요. 영적으로 애쓰는 삶을 살지 않으면 편안해지는데, 그게 지금 바로 사데교회 이야기입니다.
그냥 별 신경 안 쓰고, 교회 모이는 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서 앉아 있으면 되고요, 별로 신경 쓸 일 없고요, 뭐 별로 귀찮게 하는 일도 없고요. 그래서 편안해집니다.
하지만, 오늘 주님은 대놓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여러분, 살아 있지만, 숨은 쉬는데 죽은 거나 다름 없는 교회가 사데교회입니다. 그냥 교회로 모이지만, 예수가 없는 자리이고요, 예배는 드리지만, 하나님과 상관없이 스스로 은혜를 누리고, 스스로 기쁨을 누리고, 혼자 영광을 누립니다. 그러니까 죽은 거나 다름없는 겁니다.
매일 사도들의 설교를 듣거나 나누고, 성경을 읽었을 것입니다. 성찬을 하고, 교제를 나눕니다.
그래도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거기다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었다고 하시면서 네 행위를 안다고 그 앞에다 못을 박습니다.
너 하는 꼴을 내가 다 봤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괜찮았을 겁니다. 그래도 다 보고 계셨다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뭘 하든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냥 우리가 움직이는 것만 아시는 게 아니거든요. 미국도 좀 느는 추세인데, 한국은 CCTV가 엄청나더라고요. 사람들 동선이 다 확인될 수 있을 정도예요. 네가 뭐하는 지 다 보고있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CCTV 앞에서 조심하는데, 범죄를 계획하는 사람은 심지어 CCTV가 어디 있나를 살피기도 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설치하고, 사람이 보는 CCTV도 껄끄러운데,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다는 사실은 자꾸 잊어버려요.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하는 걸 보니까 넌 이름만 살았지, 죽은 거나 다르지 않아.” 이게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 신앙은 어떤가요?
살아 있는 게 확실합니까? 살아서 벌떡벌떡 숨쉬나요?
숨은 쉬는데, 그게 그냥 그렇습니까?
하나님 보고 계시다는데, 보셔도 괜찮습니까?
매일 매일의 삶이 하나님 보셔도 괜찮은 삶인가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질문을 심각하게 해야 합니다. 내 행위를 보고 계신데, “너 죽은 거나 다름없어” 이 소리를 듣는지, “야 넌 정말 건강하구나....” 이 소리를 듣는지. ...
2, 3절은 더 심각합니다.
(2)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다 죽기는 했는데, 완전히 죽은 건 아닙니다. 아직 죽지 않은, 아직 남은 것이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살아 있어요. 다 썩어서 문드러진 것 같지만, 아직 살아 숨쉬는 심장이 있고, 다 죽은 것 같은데 숨이 붙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자면 형편없기는 하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아직 기회가 남아 있으니까 1)생각하고, 2)복음의 말씀을 지키고, 3)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돌이켜볼 기회도 남았고, 살아날 소망도 있습니다.
비록 도둑같이, 정말 순식간에 임할 새날이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 차리고 있으면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삶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할 선이 있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나 때문에 목숨을 내어주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나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십니다.
오늘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정신 차려라. 다 죽어간다.”
우리의 영적 소생이 예수님의 간절한 소원이십니다.
우리가 늘 고백하기를 ‘우리는 죄로 죽었다’고 고백합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다고 고백합니다.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려놓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고 계십니다. “살려놨더니 다 죽어가네....” 이러고 계십니다. 완전히 죽어버리기 전에 살아나라고 아니면 끝장 난다고 영적인 회복을 강력히 촉구하고 계십니다.
교회에 신실하게 믿는 지체도 있습니다. 그래서 흰옷을 입은 자도 있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가만히 혼자 속으로 생각해 보세요. 살아있고 흰 옷을 입고 있는 분이 이 중에 있다는 이야기예요. 내가 그 사람인가. 내가 흰 옷을 입고 주님과 동행하는 지체인가.
안일하게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죽어가고 있는 분인가요? 살아 있어서 흰 옷을 입고 주님과 사귀는 분인가요?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으로 말할 수 없는 도전을 받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이 만한 공동체에 주님의 일을 감당한다고 하면서 살지만, 과연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 정신 차려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징조가 말세라고 합니다.
주님 앞에 설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 세대 안에도, 아니면 다음 세대에서라도, 모르죠, 하나님만 아시는 시간이니까.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모든 환경이 말세를 이야기 합니다. 종말입니다.
이 종말의 때를 살면서 생명책에 내 이름이 있는지, 천사들이 나를 반겨줄지, 여러분, 우리가 깊이,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정신 차리고 이 안일함과 나태함과 편안함을 떨치고 주의 음성을 들으면 우리 모두가 흰 옷을 입고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루에, 일주일에 얼마나 주님을 생각하세요? 교회는 얼마나 생각하십니까? 먹고 사는 일이 힘은 들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됐다 생각하고 계신가요?
하루에 얼마나 기도하세요?
성도는 하나님의 통치와 보호를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가 반드시 하나님 앞에 설 날이 있습니다. 오늘 보신 존 파이퍼 목사의 설교처럼 여러분, 주님 앞에 서서 사데교회 교인들처럼, 우리가 누렸던 세상의 것들을 자랑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 우리가 이런 걸 누렸습니다. 이 자동차, 이 집, 이 선물, 이런 정말 쓸데없는 보물, 우리가 이런 걸 누렸습니다.
주님, 우리가 주일마다 잠깐씩 뵌 적이 있지요. 주님, 우리가 이렇게 살았습니다. 다 주님의 은혜지요. 그러다가 ‘나는 도무지 너를 알지 못하겠다’라는 음성이라도 들을까봐 여러분, 정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진심으로 흰옷을 입고,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으로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우리를 시인하는 영광의 순간을위해 매일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이 약속을 붙들고 진실하고 신실하게 믿음을 붙들고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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