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기독교 최대의 명절이다. 연말과 맞닿은 크리스마스는 말 그대로 성탄절(聖誕節)로 부활절과 더불어 기독교의 최대 축제이며 기독교인 비기독인 할 것 없이 매년 통과의례처럼 지켜오던 절기이다. 우리 어렸을 때는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성탄절 무렵에 선물을 주고받으며 연하장 대신에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 이어’라고 쓴 카드에 이런 저런 감사의 표현을 하며 한 해를 보내곤 했다. 지난 세기 동안 많은 사람들이 집에 트리 전구 하나쯤은 달고 연말과 어우러진 크리스마스를 함께 축하하고 지냈다.


아이티에 계신 선교사님께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고 싶었다. 여쭤보니 스타벅스에서 파는 커피 한 봉지 있으면 갈아서 마셔보고 싶다고 하셔서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두 봉지를 샀다. 사면서 한동안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사이에 논란이 되었던 스타벅스 할러데이 컵을 보았다. 단순한 빨간 색에 녹색의 스타벅스 심볼이 인쇄된 컵이다. 이 디자인이 발표되었을 때, 스타벅스 컵에 크리스마스의 상징인 별이나 트리 모양이 사라졌다고, 더 이상 크리스마스를 축하하지 않는다고 말들이 많았다.


어떤 이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주문받을 때 사람 이름을 컵에 쓰는 것을 이용해, 이름을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쓰자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많은 이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할러데이 컵 때문에 놀랄 일은 아니다. 이미 지난 초가을 스타벅스 연례주주총회 자리에서 CEO인 하워드 슐츠는 동성결혼을 지지하지 않는 주주들과는 거래를 원하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알린 바 있다. 그 기업의 반 기독교적 정서의 뿌리를 보여준 것이다.


브루클린의 어느 초등학교 한국계 교장 선생님이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종교적인 이유로 쓰지 못하게 했다고 해서 논란이 되었다.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다윗의 별 등 종교적 상징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많은 학부모들뿐 아니라 종교인들의 비난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브루클린 교장 선생님은 교육적인 측면에서 그러면 안 된다. 뉴욕시 교육국에서도 크리스마스 트리, 유대교 축제 하누카에 장식되는 촛대, 이슬람교를 상징하는 별 장식 등 종교 관련 장식물을 학교 내에 설치할 수 있다는 공지문을 학교에 보낸 바 있다지 않는가. 스타벅스도 옹졸하다. 그렇게 진보적 기업이념을 갖고 있다면 나와 다른 것에 대한 포용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스타벅스에 크리스마스 표시가 사라졌다고 분노하는 우리 자신에게 먼저 묻고 싶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그 의미를 가슴에 품고 자신 있게, 당당하게 예수의 제자로 세상을 살고는 있는가. 동네 큰 수퍼마켓 앞에 있는 구세군 자선남비의 봉사자도 ‘해피 할러데이’라고 외치며 기부금을 모으는데 내 입에서 먼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할 것을 ‘해피 할러데이’라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스타벅스 컵에 크리스마스 상징이 사라졌다고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역사적 사실이 바뀌지 않는다. 교장선생님이 말을 못하게 한다고 해서 세상이 예수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스타벅스도 옹졸해 보이고 교장선생님은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기독교인 자신이다. 하늘 높은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의 그 참 뜻대로 살고는 있는가.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낼 때마다, 기독교인들도 참된 강림의 의미를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가슴에 손을 얹고 되새겨 볼 일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한 잔 하고 싶다. 아기 예수님을 가슴에 품고 빨간 컵에 온기를 더해보고 싶다. 까짓 스타벅스 따위가 어떻게 예수를 역사에서 지울 수 있겠는가. 내가 진심으로 성탄을 축하할 때, 예수님 이 땅에 오신 이유와 목적대로 살 때 남들도 예수를, 그 탄생을 인정할 것 아닌가.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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