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6 19:41
<목회 칼럼>
망하기로 했다
여행사 대리점 ‘여행이 행복한 사람들’이 코로나 와중에 개업 2년 만에 폐업을 했다. 항공권 파는 대리점이고 여행을 기획하여 고객을 안내하는 하는 곳이었다. 대표는 삼십대 후반의 여주희씨다. 많은 비즈니스가 문을 닫는 시간이니 그게 뭐 대술까 싶지만, 그이의 폐업은 특별했다.
자신이 항공권을 연결해서 해외에 나간 여덟 명의 여행객이 코로나 사태로 귀국 길이 막혔을 때, 그는 사비 1천2백만 원을 선지급하고 그들을 모두 귀국시키고 폐업했다. 항공권 팔았으니 됐고, 모든 나라가 국경을 닫은 때이니 더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수소문하고 찾고 또 찾아서, 영어가 안 돼 가입했던 카페 회원을 도움을 받으며, 교통사고로 입원한 병실에서, 항공편을 찾고 다시 예약해서 유럽에서 두 사람을, 중국에서 여섯 사람을, 자기 고객이라고 해서 끝내 귀국을 시키고 폐업 신고를 했단다.
그는 폐업의 심정을 담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쓴 글에, "결항으로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게 된 손님들을 위해서 비행편을 알아보려 인터넷 카페에 참 많이도 들어왔다. 모든 손님이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야 내 일은 끝이 났다. 차마 마지막 말은 못했지만, 당신들이 내 마지막 손님이었다. 안전하게 돌아와 주어 너무 고맙다"고 적었다.
무사히 귀국한 고객이 뒷이야기를 알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감격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가 만약 다시 여행사 문을 열고, 나도 혹시 한국에서 어디 여행을 하게 된다면, 그가 다시 문을 열 여행사를 이용하고 싶다. 왜 아니겠는가. 그는 자신의 사비를 들여가면서 마지막 손님을 책임지고 폐업했지만, 그의 인생은 결코 망하지 않았다. 망했지만 망하지 않은 것이다.
코로나로 여행길이 막히면서 많은 여행사, 항공사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려움 가운데 손해볼 일이 많아지면서 고객이 피해를 보게 되고, 여행업계의 전반적인 불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중에 망하기로 작정하고 문 닫은 여행사 대리점 ‘여행이 행복한 사람들’의 폐업 스토리는 특별하다.
코로나로 모두가 다 어렵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모이지 못하니 공동체의 영적 건강이 염려되고, 게다가 헌금의 급감으로 현실적인 문제도 대부분의 교회가 겪는 일이 되어 렌트비를 염려하기도 한다. 온라인으로 모이는 것조차 그만한 능력이 되어야 하는 현실에서 불과 몇 명 되지 않는 교인과 함께 온라인으로 교회가 모이고 영적인 공동체로서의 모임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와중에 한국에서는 교회들이 끼치는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교회가, 예수 믿는 일이 잘 죽는 일, 잘 망하는 일이라면, 이런 어려움은 어려움이 아닐 수 있다.
한국 일산의 씨앗교회라는 출석 교인 60명 정도의 작은 교회가 화제다. 교회 임대보증금을 빼서 10개월간 성도들의 기본생활비로 지급하기로 했다고 한다. 네 명의 목사가 공동목회를 하는데, 성도들과 함께 마음을 합해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기로 했다고 한다. 그들은 '어디서' 예배를 드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 가에 주목한다. 코로나 시대가 지나고 다시 예배의 모임 장소가 필요할 때, 그곳이 광장이든 공원이든 열망으로 모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한다.
씨앗교회는 망하기로 했다. 모든 교회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망하는 교회도 있어야 교회는 살아날 수 있다. 여행 고객을 끝까지 책임지고 문을 닫아 망한 여행사처럼, 성도들의 삶을 책임지려고 어렵게 마련한 예배당의 보증금을 빼 모일 장소를 버린 교회는 그 선택만으로도 이미 수많은 이들의 희망으로 살아나고 있다.
망해야 산다. 예수는 죽어야 산다고 했다. 그런데 왜 교회는 더 크게, 더 부자로, 더 많을 것을 가지고 살려고 발버둥 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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