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투표합시다

2020.11.02 15:54

admin 조회 수:1160

조국 사태가 시작되었을 때, 한동안 페북에 격렬하게 조국을 응원하고 지지하던 목사님들이 있었다. 대개 문빠로 분류되는 이들과 궤를 같이 하며, 진영논리로 중무장하고 거침없는 표현으로 페북을 도배했다. 조국이 아니면 대한민국 검찰이 개혁되지 않고, 법치가 바로 세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조국만이 하늘이 내린 법을 공정하게 할 위인인 듯했다. 조국을 반대하는 것은 정말 조국을 배신한 매국노처럼 매도했다. 조국이 훼손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정과 평등의 가치는 그들에게 사소해도 너무 사소한 실수, 그래서 용서라는 단어조차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묻고 싶었다. '목사님 교회 성도들은 모두 목사님과 동일한 생각인지' 묻고 싶었다. 나도 정치적 의견이 있다. 나는 물론 조국으로 인해 훼손된 공정, 정의, 평등이 안타까운 쪽이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은 것은 비겁함 때문이 아니다. 어차피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 시민이 되어 살고 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일까 마는, 내가 무겁게 생각한 것은, 우리 교회에도 내 생각과 다른 이들이 있고, 목사로서 너는 그르고, 나는 옳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지 않다는 것 때문이었다. 실제로 조국 편을 든다고, 안 든다고, 편이 갈라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신앙 안에서 본다면, 조국을 틀렸다고, 반대로 맞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고 생각했다. 조국을 편드는 것만이 성경적 정의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렇다고 그것이 지극히 반 성경적인 일이라고 판단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 존경해마지 않던 목사님들이 격하게 어느 한쪽 편을 들고, 상대를 세속의 언어로 난도질할 때 안타까웠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내 주변의 많은 이들이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 대놓고 반 트럼프임을 드러내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바이든이 약체라든가, 바이든이 된들 뭐가 달라지겠냐고 서슴없이 이야기 하는 이들도 상당수 있다. 이민자로서 민주당 정책이 우리에게 좋을 것 같은데, 뭘 좀 밀어붙이고 중국에도 세게 나가는 트럼프가 차라리 더 낫지 않겠느냐는 사람도 적지 않다. 게다가, 신앙적인 면에서 공화당 편에 선 이들도 많다. 적어도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동성애를 반대하고,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그들이 모두 성경적이고 신실하게 복음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 것은 하나님께'라는 말씀으로 현실 제도 정치와 하나님 나라를 구분하셨다. 세상에서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신앙인으로서 옳은 것을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조국은 성경적인가? 조국은 약자이며, 가난한 자이며, 교회가 돌봐야 할 자인가? 조국에 반대하는 성도는 틀린 것인가? 조국만이 대한민국의 법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인물인가? 교회의 현실참여, 사회참여는 어디까지여야 하는가? 교회 안에, 같이 예배드리는 한 공동체 안에 서로 반대되는 의견이 존재할 때, 어느 한쪽은 틀린 것인가? 교회는 때로 틀린 것과 다른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같은 교회 공동체 안에도 트럼프와 바이든으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이 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인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 사회적 책임은 내 뜻과 다른 의견을 가리켜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 용기 앞에서, 그것은 그저 서로 다른 것이라는 수용의 넉넉함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대통령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교회는 정치를 떠나 있지 않지만 교회가 정치는 아니다.  성경은 트럼프가 옳다고, 또는 바이든이 낫다고 말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른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나라의 격을 무너뜨렸다고, 바이든이 나이 많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현직 대통령이 나라를 분열시키고, 인종을 갈라치기 한다고, 도전자가 무능해보이고, 신앙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성도도 어느 편인가에 투표를 하게 되고 해야 한다.
 
정교 분리의 오랜 역사는 그저 우리에게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투표는 이 세상의 일원으로 책임을 다하는 한 방편이다. 그저 책임 있는 민주시민으로서 행사할 당연한 책무이자 권리이다. 투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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